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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컬럼90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 운영자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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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apcan.or.kr/bbs/bbsView/44/6514063

어거스트 힐튼은 힐튼 호텔의 창업자인 콘래드 힐튼의 아버지였다. 노르웨이 이민 1세였던 어거스트 힐튼은 뉴멕시코 리오 그란데 강변에서 잡화점을 하다가 1907년 뉴욕 대공황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직전에 놓이게 되었다. 당장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가족을 모아놓고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우선 상점에는 팔다 남은 식품을 포함한 재고품이 있었고, 열 명의 건강한 가족이 있었으며, 넓은 상점건물이 있었고, 아내는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 그들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결정한 미래는 리오 그란데 강변에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하는 것이었으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수백 곳의 체인점을 거느린 힐튼 호텔의 시작이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그 길로 매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길이다. 캄캄한 밤길에 번개가 칠 때 현명한 사람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걸어야할 길을 살핀다. 험한 세상 때로 힘든 일을 만날 때 남아 있는 것을 살펴서 주저 않지 않고 꿋꿋이 일어섰던 호텔 왕 콘래드 힐튼의 아버지를 기억할 것이다

 

159797일 명량 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우리 수군을 없애려는 선조 임금께 올린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죽을힘을 다해 항거해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미천한 신이 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상소문에서 비장한 장군의 애국 충정을 읽을 수 있다. 330척의 왜선에 맞서야 했던 부서지고 깨어진 12척의 남아 있는 배는 장군에게도 조선에게도 마지막 희망이었다. 장군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남아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겠다는 결의가 찾고, 그는 그 남은 것으로 기적 같은 승전보를 역사에 남겼다. 안네 프랑크는 은신처에 갇혀 지내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집단 수용소에서 16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만약 안네가 은신처에서 눈물만 흘리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겠지만 그 소녀의 눈물은 안내의 일기라는 불후의 명작을 세상에 남겼다. 구전 문화에서 기록문화로 문화혁명을 이룬 종이는 중국에서 누에고치에서 솜을 만드는 과정에서 걸러낸 남은 찌꺼기들이 용기 바닥에 가라앉아 생기는 엷은 막에서 종이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동한 원년(105) 채륜이 오늘날과 같은 종이 제조술로 발전시켰다.

 

194410월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치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그는 신경정신과 의사였고 의미치료(Logotherahy)를 창안하여 한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고 아우슈비치에 오기 전에 소중한 원고를 외투 안감에 넣고 꿰메었다. 수용소에 도착하자 나치 친위대 장교가 인간 감별을 시작했다. 장교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설 때마다 무심한 표정으로 오른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르켰다. 가끔 열 번에 한번 정도 오른쪽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 중에 이 간단한 장교의 수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프랭클 차례가 오자 장교는 왼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왼쪽으로 간 사람들 중에 그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오른쪽 줄에는 간혹 아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는 장교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오른쪽 줄로 끼어 들었다. 장교의 손가락 방향에 따라 삶과 죽음이 걸정되었다. 왼쪽은 죽음의 가스실이었고 오른쪽은 삶의 길인 샤워실이었다. 선별 작업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수중에 지닌 모든 물건을 압수당했다. 프랭클은 목숨만큼 소중한 원고만은 죽더라고 세상에 남기고 싶어 고참 수감자에게 애원을 했으나 허사였다. 소지품은 모두 압수당하고 옷이 벗겨진 채로 남은 것은 안경, 허리띠가 전부였다.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스실에서 숨을 거둔 희생자들이 남긴 낡은 옷더미에서 자신에게 맞는 크기의 옷을 찾는 것이었고, 그는 얇고 다해진 외투 하나를 골랐다. 그 외투 주머니에서 신명기 6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기도문이 든 종이 한 장을 얻었다. 자신의 옷 속에 숨겨둔 소중한 원고를 빠앗긴 대신 누군가가 옷 안에 숨겨둔 중요한 기도문을 얻은 것이다. 그는 삶에 기대할 아무것도 남지 않고 체념하려는 순간 글로 쓰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삶의 의미와 책임을 깨닫게 된다. 프랭클은 생존 확률이 5%도 채 안 되는 극한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달은 사람, 삶의 의미를 믿고 꼭 해야할 일이 남아 있다는 목적 의식이 강한 사람일 수록 무자비한 시련을 잘 견뎌 살이 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훗날 의미치료로 체계화하였다.

 

(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길에서 무엇(What)을 하다가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안네 프랑크는 은신처에 갇혀 지내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집단 수용소에서 16살 어린 나이로 죽었다. 만약 그가 은신처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만 흘리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녀의 눈물이 생각으로 쒸어져 안내의 일기(Het Achterhuis)로 세상에 남았고, 유네스코는 세계기억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김정국(1485-1541)150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518년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다음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경기도 고양에 내려가 학문을 닦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그는 잠자리에 누우면 남은 공간이 있고, 옷을 입었는데도 남은 옷이 있으며, 주방 바닥에는 먹다 남은 밥이 있다네라는 글의 세 가지 남은 것()이라는 말을 따서 호를 삼여거사(三餘居士)라 지었다. 그 분은 의식주(衣食住)를 갖췄다 하여 자칭 삼여거사로 불렀다고 하지만 정작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지를 아는 사람이 드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 날 읽었던 나라의 큰 어른으로 존경 받던 한경직 목사님의 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93세 되는 가을, 나는 자다가 깨어나 메모를 남기고 다시 잠들었다.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를 향하는 그리움과 겨레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90 고개를 넘기면서는 나를 위해 남기고 싶은 것은 다 없어진 것 같았다. 오직 남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다.”

 

돌이켜보면 50년이 넘도록 내가 걸어온 아동복지라는 외길은 험하고 굴곡진 길이었다. 이제부터는 남은 것이 세월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긴박감이 찾아들기 시작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을 위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 일을 위해 행동하는 사회복지사로 남는 길을 걷고 싶다. 백운 이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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