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컬럼91 염려의 본질 | 운영자 | 2025-0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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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천 길 협곡 사이에 엄청난 굉음을 내며 급류가 흘러가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 2명이 철사를 꼬아서 만든 출렁거리는 외줄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위험하여 한 사람씩 건너야 했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 한 사람이 차례로 무사히 다리를 건너갔는 데 나머지 눈과 귀가 멀쩡한 사람은 그만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다리를 무사히 건넌 시각을 잃은 이는 말했다. “나는 계곡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볼 수도 없어 쇠줄만 꼭 잡고 건넜다.” 청각을 잃은 이는 말했다. “나는 물살의 우렁찬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별로 두렵지 않았고 그저 앞만 보고 다리를 건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말했다. “나는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했고 깍아지른 절벽이나 세찬 물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침착하게 한발 한발 건너편을 향해 쇠줄을 잡고 걸어나갔다.” 물에 빠진 사람은 너무 눈과 귀가 밝았던 것이다. 실패는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주위의 환경에 예민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데서 올 수도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리우웨이의 ‘나를 위한 이야기’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가 잘 아는 기우(杞憂)라는 말은 중국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면 어찌하나, 땅이 꺼지면 어찌하나를 온종일 염려하고 밤잠을 자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뜻이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는 성경(마태 6:34) 말씀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염려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어제의 문제와 내일에 대한 염려들이 현재를 지배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소유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내 나이 50을 넘을 때부터 지금까지 힘들고 굴곡진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 마음속에 간직한 논어의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염려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는 가르침이 인생의 험한 풍파에 견디며, 예측할 수 없었던 미래를 낙관하며, 힘들었던 운명에 넘어지지 않는 용기가 되어왔다. 지혜 있는 성현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무엇을 잃을까 염려하지 않으며, 인연을 따라 유유자적한 삶을 살라고 하셨다. 이는 사람들이 인연을 따라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라거나 도피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명확하게 인식하며, 세상의 시선에 신경을 쓰느라 불안한 마음으로 인생의 노영에서 쫒기 듯 살지 말고, 자기의 주체적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날마다 걱정과 염려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보험회사 빌딩이 어느 도시에서나 가장 높다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이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은 덧없는 것일 수가 많다. 통계에 의하면 염려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며, 일어나지도 않을 40%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30%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또 일어날까 염려하는 걱정이다. 22%는 눈 오는 날 길에서 넘어질까 염려하는 것과 같은 너무나 사소해서 무시해도 되는 염려라고 한다. 나머지 염려의 4%는 정말 일어난다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라는 글을 읽었다. 우리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4% 때문에 평생을 염려로 보낼 수는 없다. 그때 가서 닥치면 맞서보는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 마르쿠스 키케로(Marcus Tulius Cicero)는 “시간은 모든 슬픔을 치유한다”고 하였다. 성서(시편 119편)에 나오는 티테디오스(Titedios)라는 말은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비록 티테티오스처럼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다하여도 오직 믿음만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기도 바쁜데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하여 걱정하며 염려하고 있는가? 때로 시간이 해결할 일을 두고 미리 염려와 근심으로 오늘을 덧없이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불확실한 내일을 대비한다는 것과 미래에 대한 오늘의 덧없는 염려와 근심은 본질이 다른 것이다. 어느 분이 보내주신 좋은 글에서 어떤 목수는 낮에 일터에서 생긴 상처나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퇴근하면 항상 집 앞의 나무까지 와서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모든 고통과 염려를 나무에 걸어두고 집으로 들어간다며 그 나무에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일하면서 누구나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그 문제와 어려움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 나무 앞을 지나면 바람에 날려갔는지 모든 문제와 고통이 많이 사라지고 없다고 했다. 수면장애로 고통받던 지인으로부터 생각의 흐름을 멈추도록 하는 ‘정지신호’라는 요법에 대해 들은 적이있다. 수면장애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인간의 신체는 최소한 필요한 수면을 저절로 취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믿고, 잠이 안 오는 시간에 왜 안 오나 하고 염려하는 대신에 주말계획을 세워보거나, 내일 만날 사람들과의 즐겁고 신나는 모임을 상상하는 등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일들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말했다. “의사가 범하는 최대의 과오는 우선 마음을 치료하지 않고 육체를 치료 하려는 데 있다. 사람의 마음과 육체는 둘이 아니요 하나로 따로따로 취급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날 나는 거실의 전등을 끄고 불빛이 없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모든 것이 잘 보였다. 다시 거실의 불을 켜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의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내가 오늘의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승자는 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패자는 이기는 것도 염려한다.” 크라이슬러 전 회장 리아이아코카(Lee Iacocca)의 말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염려와 근심으로 좌절하고 때로 도저히 풀 수 없는 힘든 문제로 주저앉고 싶을 때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주어진 오늘을 위하여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여린 새싹이 얼어붙은 땅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지금은 희망의 계절이다. 백운 이배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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